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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아꼈던 조조를 배신하고 최후를 맞이한 책사 진궁

by 내일은더행복하길 2023.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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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궁과 조조

 

 

전략에 따르면, 진궁은 연주 동군 동무양현 출신으로 강직하고 굳센 성품을 가졌고 어렸을 때부터 나라 안의 이름난 선비들과 친분을 쌓으며 발을 넓혔다고 합니다. 그가 언제 조조의 밑으로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초평 2년(191년), 조조가 원소의 도움으로 동군 태수가 된 뒤 진궁의 고향인 동무양현을 치소로 삼았는데 아마 이때 조조에게 임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초평 3년 (192년) 연주자사의 유대가 청주의 황건적 무리와 싸우다 전사하자 진궁은 조조에게 '지금 연주는 주인을 잃었고 왕명은 단절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가서 연주 사람들을 설득할 테니 명부(조조)께서는 나중에 와서 주목의 자리에 오르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연주를 기반으로 삼아 천하를 얻으십시오. 이는 패왕의 업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연주의 고위 관리들과 접선합니다. 진궁은 그들에게 '지금 천하가 분열되었는데 연주는 주인을 잃은 상태요. 동군 태수 조조는 세상을 바로 잡을 인재이니 만약 그분을 맞아들여 주목으로 삼는다면 필시 백성들을 평안케 할 것이오.'라고 말했고 이렇게 진궁의 설득에 넘어간 연주의 관리들은 직접 동군으로 가서 조조를 맞이해 그를 연주목으로 삼습니다. 

 

 

 

여포와의 관계 

 

 

흥평 원년(194년) 조조가 2차 서주 정벌을 나서며 진궁에게 군대를 주어 동군에 남아 주둔하라 명했는데 오히려 진궁은 진류 태수 장막의 동생 장초 등과 함께 조조를 배반할 것을 모의한 뒤 장막을 찾아갑니다. 진궁은 장막에게 '지금 영웅들이 봉기하니 천하가 나뉘고 무너졌습니다. 그대는 천리에 걸쳐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요충지도 차지하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호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도리어 남의 밑에만 있으니 비루하지 않습니까! 지금 조조의 병사들은 동쪽을 정벌하느라 연주는 비어있습니다. 이때 싸움을 잘하는 여포를 불러들여 그와 함께 연주를 다스리고 천하 형세를 관망하여 때를 기다린다면 한 시대의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배반에 동참하라고 설득합니다. 장막은 조조와 벗 이상의 친분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때마침 조조가 원소의 명으로 자신을 죽일 것이라 생각하며 조조를 의심하고 있었기에 진궁의 설득에 넘어가 조조에게 반기를 들게 됩니다. 장막이 진궁의 조언에 따라 여포를 맞아들이자 그들의 명성에 힘입어 연주에 있는 대부분의 현들이 거사에 참여했지만 견성현에 주둔하고 있던 순욱이 하후돈을 불러 모반한 관리들을 모두 주살하여 그곳의 군대를 장악했고 정욱이 법현과 동아현을 돌며 그곳의 관리들을 설득하는 활약을 하여 애초에 연주 전체를 차지하려 했던 진궁의 계책에 차질이 생깁니다. 게다가 정욱이 창정진의 나룻길을 끊는 바람에 복속되지 않은 지역을 점령하려던 진궁의 군대는 전진할 수 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순욱과 정욱의 활약으로 시간을 번 조조는 서주에서 물러나 전군을 이끌고 귀환하여 여포의 군대와 전투를 벌입니다. 치열한 전투는 2년(195년)까지 지속되었으나 결국 조조의 승리로 끝이 났고 진궁은 자신이 군주로 삼으려 했던 장막과 그 일족이 모두 죽어버리자 할 수 없이 여포에게 합류합니다. 애초에 진궁을 여포를 전쟁 도구로 사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신하가 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도 군신 관계가 아닌 협력 관계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진궁의 최후 

 

 

조조는 계속된 공격에도 여포의 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병사들이 연이은 전투로 피로해 하자 퇴각할 마음을 먹었는데 순유와 곽가가 반대하며 수공을 써볼 것을 제안하자 그 계책을 따라 성을 물바다로 만들었고 결국 여포 휘하에 있던 장수들이 버티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켜 여포와 진궁은 조조에게 사로잡힙니다. 전략에 따르면 조조는 포로가 된 진궁에게 '진궁, 그대는 평소에 늘 스스로 지모를 갖추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 된 일이오?'라는 말을 넌지시 건넸고 이에 진궁은 여포를 가리키며 '이 사람이 내 말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그가 내 말을 좇았다면 필시 사로잡히는 신세는 되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진궁의 답변에 조조는 한바탕 웃은 뒤 '내가 자네를 어떻게 하면 좋겠소?'라고 물었고 진궁은 '신하가 되어 충성하지 않고 자식이 되어 효도하지 않았으니 죽는 것이 제 운명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조조는 '경의 뜻이 그러하다면 경의 노모는 어떻게 하면 좋겠소?'라고 물었고 진궁은 '노모의 생사는 왕에게 달려 있지 저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무릇 효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남의 육친을 해지지 않는 법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조조가 '그럼 경의 처자는 어떻게 하면 좋겠소?'라고 묻자 진궁은 '제가 듣기로 천하에 인정을 베푸는 자는 남의 제사를 끊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처자의 존부 또한 명공에게 달려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조조는 진궁의 대답에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는데 그것을 본 진궁은 '청컨대 저를 밖으로 내보낸 뒤 죽여서 군법을 밝히십시오.'라고 말하고는 빨리 자신을 처형할 것을 재촉하였고 이에 조조는 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진궁을 전송했으나 진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처형장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이후 조조는 노모와 식솔득을 그가 당초 조조의 휘하에 있을 때보다 더욱 후하게 대우해 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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